노량해전의 진실

노량해전의 진실


"19일 진인ㆍ이순신이 적병을 노량에서 무너뜨리고 9백여 급을 베었는데, 이순신도 순국(殉國)하였다. 이보다 앞서 사천의 적의 괴수 의홍(義弘)과 남해의 부괴수 평조신(平調信) 등이 행장과 의지의 부름에 따라 군사중에 노약자들과 포로된 남녀를 배에 싣고 먼저 떠나게 하고, 자신이 백척을 거느리고 밤 조수를 이용하여 나와 응원했다. 수군 복병장(伏兵將) 경상 우수사 이순신(李純信)이 거룻배로 달려와 보고하였다. 진인과 이순신(李舜臣)이 여러 전선을 거느리고 좌우협(左右協)이 되어 아군은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주둔하고, 명군은 곤양의 죽도(竹島)에 주둔하여 닻을 거두고 변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함밤중에 적선이 광주(光洲) 산도(山濤) 사천 남해로 오는 수로의 이름이다. 로부터 구름이 합치듯 안개가 모이듯이 모여들어, 곧장 노량을 지나 막 왜교로 향하려는데, 한 번 바라 소리가 울리니 포 소리와 북 소리가 겸하여 진동하고, 아군과 명군 양군이 돌발하여 좌우에서 엄습하니 살과 돌이 섞여 떨어지고, 불붙은 섶을 마구 던져서 허다한 왜선을 태반이나 불태웠다. 적병은 목숨을 걸고 혈전하였으나 형세가 지탱할 수 없어 바로 물러가 관음포(觀音浦)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밝았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올라가 추격하며 죽이는데 적의 포병이 배 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을 향하여 일제히 쏘아 이순신은 총알에 맞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급히 장좌(將佐)에게 명하여 방패로 신체를 지탱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비밀로 하여 발상(發喪)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에 그 아들 이회(李薈)가 배에 있다가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북을 울리며 기를 휘둘렀다. 낮도 되지 않아서 적의 배는 거의 다 진멸되고 물에 뛰어들어 죽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으며, 도망하여 벗어난 자는 겨우 50여 척이었다. 아군은 수급을 거두어 진인에게 다 바쳤다. 우리 배는 함평(咸平)의 전함이 적에게 불탔다. 한참 싸움이 무르익었을 때에 행장 등이 철병하여 몰래 묘도의 서량(西梁)을 따라 나가 평산(平山) 보(堡)의 이름인데 남해 땅에 있다. 으로 향하여 바다로 달아났다. 남해에 머물러 있던 왜적도 노량(露梁)에서 패전함을 듣고 섬 가운데의 육로를 경유하여 미조항(彌助項)으로 달아났는데, 의지(義智)는 거두어 가지고 함께 갔다. 유정은 왜교에 연기와 화염이 하늘을 가린 것을 보자,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 나가니, 적의 성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인하여 유둔하니 본국의 장사들이 따랐다. 이순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좌상(左相)은 충청 병사 이시언(李時言)을 임시로 통제사에 임명하고, 전라 방어사 원신(元愼)을 임시로 병사에 임명하였다. 이시언이 하동으로 달려가니, 진인이 먼저 이순신(李純信)으로서 통제사를 임시로 정하여 이미 수군을 영솔하고 있으므로 이시언이 즉시 본진으로 돌아왔다. 진인이 여러 군사를 이끌고 남해진(南海陣)으로 들어가 탐색하여 군량 만여 석을 거두었고 우마도 셀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대로 유산(流山)에 머물렀다. 수병들이 전후로 수급을 벤 것이 천에 달했고, 그 가운데에는 우리 나라 사람으로 잘못 죽은 자도 많았다. "




○十九日。陳璘李舜臣。大敗賊兵于露梁。斬九百餘級。舜臣殉國。先是。泗川賊酋義弘南海副酋平調信等。因行長義智徵援。以軍老弱及被虜男女。載船先發。自領數百艘。乘夜潮赴援。舟師伏兵將慶尙右水使李純信走舠來報。陳璘與李舜臣。率諸船爲左右協。我軍屯于南海觀音浦。天兵屯于昆陽竹島。撤碇待變。夜半賊船自光洲山濤。泗川南海來路洋名 雲合霧集。直過露梁。方向倭橋。一捧鑼響。炮鼓兼動。兩軍突發。左右掩擊。矢石交下。柴火亂投。許多倭船太半延爇。賊兵殊死血戰。勢不能支。乃退入觀音浦。日已明矣。舜臣親自援枹先登追殺。炮賊伏於船尾。向舜臣齊發。舜臣中丸不省人事。急命將佐。以防牌支身體。使之秘不發喪。時其子薈在船。從父分付。鳴鼓揮旗。日未午。賊船幾盡。投水死者無算。逃脫者僅五十餘艘。我軍收馘。盡納于天將。我國船則咸平戰艦爲賊所焚 方酣戰之時。行長等撤兵潛出猫島西梁。向平山。堡名南海地也 洋而走。南海留在之賊。聞露梁之敗。由島中陸路。走出彌助項。義智收而同去。劉綎見倭橋烟焰蔽天。領軍馳進。賊城已空。因留屯。本國壯士隨之。聞李舜臣死事。左相以忠淸兵使李時言假差統制。以全羅防禦使元愼假差兵使。時言馳至河東。則陳璘先以李純信假定。已領舟師。時言卽還本陣。陳璘率諸軍。入探南海陣。收得軍粮萬餘石。牛馬至不可數。因留流山。水兵前後斬馘滿千。而其中多有我人誤死者。








수병들이 전후로 수급을 벤 것이 천에 달했고, 그 가운데에는 우리 나라 사람으로 잘못 죽은 자도 많았다. "


水兵前後斬馘滿千。而其中多有我人誤死者。






노량해전 때 시마즈 수군 500척 중에는 조선인들도 많이 타 있었던거 같음.




정유재란 때 시마즈 수군 숫자가 1만명 밖에 안되는데. 안택선,관선(세키부네),고바야부네에 차곡 차곡


태워도 90척 정도가 최대임.


그럼 나머지 400척엔 누가 탔나?


아마 조선인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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