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의 도읍 이름이 건강建康인데. 동진의 중심지가 장강과 회수가 흐르는 곳인데. 후당의 황제 숙종이 고려 왕건을 책봉할 때 왕건은 장강과 회수의 번성한 종족이라 함. 송나라도 고려 성종을 책봉할 때 “늘 백제(百濟)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길이 장회(長淮)의 겨레를 무성하게 하라.”라고 말함. 궁예 정권 초기 왕건이 후백제와의 해상전에서 전라도 서해 바다의 섬들 수십개와 나주를 탈취하는데 성공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을 도자기를 열심히 만드는 도공으로 만들어서 이들이 만든 도자기를 중국에 수출함. 근데 중국 동해안 난징 일대는 백제 멸망 전에도 서기 4세기~서기 6세기 남북조 시대에 백제와 많은 교류가 있었고, 서기 7세기 백제 멸망 후에는 백제 백성들이 중국으로 질질 끌려온 후에도 백제인들이 중국 동해안가에 거주하면서 신라와 연계하여 '신라방'이 되었다고 한다.(한국의 역사학자 '김성호'가 이 분야를 열심히 연구함) 왕건과 왕건建 가문과 엄청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신천 강康씨가.... 글자 합체 하면 건建 강康. 동진의 도읍 이름이다. 왕건 가문,신천 강씨는 중국에서 온 백제 유민들이 아닐까...!
견훤은 왜구 겐지인가 삼국유사 견훤 탄생 신화 보면 야마토 정권 삼륜산 시조 탄생 신화와 비슷하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본래 이름은 원선(元善)이다. 삼국유사 견훤전에 인용된 [이비가기]란 기록에 따르면,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註 352의 시호는 백융부인註 353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註 354의 아들 파진간(波珍干)註 355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註 356작진(酌珍)註 357이 왕교파리(王咬巴里)註 358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註 359이다. " 라는데. 견훤의 조상에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가 있다는건 견훤 가문이 자신들의 기원을 조작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신뢰하기 힘들다. 다만 견훤의 고조부가 파진찬 선품인데. 파진찬은 해양 무역과 관련된 관직이란다. 견훤이 후백제 정권 창업 당시 해적 능창이나 순천 해양 호족 김총을 끌어들인 것으로 볼 때 그가 해양 세력 특히 일본과 어떤 관련이... 원선(元善)의 원(元)은 일본 발음으로 '겐(Gen)'이다. 견훤... 겐훤...... 아자개는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로 보낸 승마술 전문가 '아직기'와 이름이 닮았다. 허.... 그렇다면 아자개, 견훤은 왜구란 말인가? 그렇다면 신라 수도를 불바다 피바다로 만들고 신라 왕을 강제 자살시키고 신라 왕비를 겁탈한 것도 다 이해가 된다.
원나라 쿠빌라이 때 백제 왕이 신하 양호를 보내 조공바쳤다. 원사 세조본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테마 음악============ https://youtu.be/onpl_pH-vDw?si=lLUvCs4YzWuOOuHS ================ ========= [四年春正月甲午,陝西行省以開州新得復失,請益兵,敕平陽、延安等處簽民兵三千人,山東、河南、懷孟、潼川調兵七千人益之。丁酉,申嚴平陽等處私鹽之禁。壬寅,立茶速禿水十四驛。癸卯,敕修曲阜宣聖廟。乙巳,百濟遣其臣梁浩來朝,賜以錦繡有差。禁僧官侵理民訟。辛亥,封安肅公張柔為蔡國公。以趙璧為樞密副使。立諸路洞冶都緫管府。癸丑,敕封昔木土山為武定山,其神曰武定公;泉為靈淵,其神曰靈淵侯。簽蒙古軍,戶二丁三丁者出一人為軍,四丁五丁者二人,六丁七丁者三人。乙卯,高麗國王王禃遣使來朝,詔撫慰之。戊午,立提點宮城所。析上都隆興府自為一路,行緫管府事。立開元等路轉運司。城大都。] "4년 봄 정월 갑오일에, 산서성 행정부는 개주에서 새로 얻은 지역을 다시 잃었다고 보고하며 병력 증강을 요청했습니다. 평양, 연안 등지에서 민병 3천 명을, 산동, 하남, 회몽, 통천에서 병력 7천 명을 추가로 동원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정유일에, 평양 등지에서 민간인의 소금 밀매를 엄격히 금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임인일에는 차속두수의 14개 역을 설립했습니다. 계묘일에는 굽우흥성묘의 수리를 명령했습니다. 을사일에는 백제가 그의 신하인 양호를 조정에 보내왔고, 차별적으로 비단과 자수를 하사했습니다. 승려 관리가 민간 소송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신해일에는 안숙공 장유를 채국공으로 봉했습니다. 조석을 승비부사로 임명했습니다. 각도의 동연도총관부를 설립했습니다. 계축일에는 예전의 무토산을 무정산으로, 그 신을 무정공이라 하고, 샘을 영연으로, 그 신을 영연후라 명명했습니다. 몽골군을 모집하여, 2명 또는 3명의 세대당 한 명씩 군대에 편입시켰습니다. 을묘일에는 고려의 왕 왕족이 사절을 보내왔고, 위로와 격려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무오일에는 궁성 지역의 관리를 담당할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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