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인들은 단군왕검의 존재를 알았나?

 고구려인들은 단군왕검의 존재를 알았나?



삼국사기 보면 고구려 동천왕이 관구검에게 쳐발린 후 수도 환도성 내다버리고 


평양으로 천도했는데




평양=선인(신선 혹은 먼 옛날 사람이란 뜻) 왕검의 저택  


이라고 적혀있다. 


고구려 수도인 북한 평양이 왕검의 땅이라는 깊은 기억이 뿌리 깊이 내려있었고


북한 평양 지역 주민들은 고구려 수도가 되기전부터 '왕검'이란 자를 자신들의 조상 혹은 지역의 깊은 전통의 산신으로 


여기고있었을수 있다.




근데 고조선 말기(위만조선 시대) 고조선의 수도는 '왕험성' 혹은 '왕검성'이라 불렸는데.




왕험王險


왕검王儉


글자가 비슷하다. 그래서 둘 다 같은 인물을 말하는듯하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수도의 이름을 '람세스의 집'이라 불렀다.(오늘날의 '칸티르')


이런걸보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 혹은 왕험성 역시 시조의 이름을 딴 것이고 


적어도 위만조선 시기에 고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시조를 '왕검' 혹은 '왕험'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단군왕검 신화가 고려시대 중기나 후기에야 형성되었다는 기존의 설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으로 만든 고구려 지배층들은 


단군 혹은 왕검이란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을까?




고구려가 왕검이란 신을 숭배하거나 어느정도 존중이라도 해줬는지는 고구려 시대 기록이 남아있지않아서


모른다. 


어쩌면 사당을 차려주고 제사는 지냈을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편에 "평양은 왕검의 저택이다."라고 나오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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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부 왕조가 고구려와의 깊은 교류 끝에 적은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 지배층이 섬긴 신들이 나오는데. 그 신들 중엔 태양신도 있고 달신도 있고 별자리 신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시시하니 제껴버리면 그만인데. 


그런데 주목할만한 신들의 이름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기자신,가한신 인데.




기자신은 중국 은나라 왕족 기자를 신으로 숭배한 것이니 별 그다지 가치 없고.


가한 신이 중요하다.




가한 이것은 칸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이것은 북방유목민족 느낌 나는 신인데




어째서 만주 , 한반도 북부의 토박이 종족인 예맥족인 고구려가 도대체 어째서 북방유목민족 느낌 나는 신 '칸khan'을 




모시며 제사 지내는 것인가?




중국 기록 [북사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인들은  '부여'란 이름의 여신 


그리고 그 여신의 아들인 '등고高登' 이렇게 두 모자신을 숭배했다고 한다.




성모마리아,예수 느낌 난다.




대체로 당시에 이 두 신은 각각 하백의 딸 , 주몽 이라고 여겨졌다는데. '대체로'라고 말하는걸 보면 확정적인 결론은 아니고 


그냥 대강 동일시된 거 같다.


마치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를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동일시한 것처럼.




혹시 이 '등고'가 단군의 원형에 해당하는 신이 아닐까?




'단군'


단군은 제왕운기엔 단군檀君 즉 박달나무의 우두머리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엔 단군壇君 즉 제단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조선 옛 말에 무당을 '당골'이라고 불렀단다. 당골이 한자로 적힌게 '단군'이란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몽골인들이 신을 '탱그리'라 부르는데. 이 탱그리가 만주,한반도로 전파되서 당골이 되고


이게 단군이 된거라고 한다.




어.... 뭔가 환빠 사이비역사학식 짜맞추기같지만 이건 민족의 석학 '최남선'도 주장했던거다. 뭐 최남선도 환빠스러운 사람이긴 하지만.




일단 고구려인들이 가한 신이란 신을 숭배했다는 걸 기억하자.


몽골족이 숭배할법한 신을 고구려가 숭배했다.


고구려가 아무리 돌궐과 친하게 교류했다해도 돌궐이 숭배하는 신을 고구려가 숭배할 이유는 없다.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의 조상인 '부여' 왕국의 건국자들은 어딘가에서 나라가 망해서 만주로 망명와서 '부여'를 세운거라고


적혀있다.


삼국유사에도 부여 시조 해모수가 하늘에서 전차를 타고 내려와서 만주 부여에 살던 토박이 족장 해부루를 쫓아내고 부여를 세웠고 


해부루는 동쪽 해변가로 쫓겨나서 '동부여'를 세웠다고 적혀있다.




'가한' 신이란 이름에서 뭔가 북방 시베리아에서 전차를 타고 내려온 이주민 집단의 스타일이 느껴진다.




부여와 관련있는 요녕성 서풍현 고분군이나 길림성 유수현 노하심 고분군에서 스키타이 스타일의 유물들이 나오는건 


부여의 건국자들이 스키타이 혹은 북방 계통임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어딘가에서 쳐망해서 탈갤해서 여기로 온거라잖아.



//부여,삼한의 왕들과 북방기마민족의 관련 




북방에서 내려온듯한 시조 신은 금관가야엔 김수로가 있고 , 신라엔 혁거세 거서간이 있다.


이 신 둘 다 부여 시조 동명처럼 어딘가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온 신이고 


알에서 태어났고 


특히 혁거세,동명은 둘 다 말하고 관련있고


혁거세의 별명인 '불구내'는 밝은 광명이란 뜻이라고 하니 동명東明하고 비슷하다. 




혁거세 이름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거서간은 몽골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게세르 칸'이라 부르는 것으로 볼 때


거서간,게세르 칸 서로 관련있는거같다.




진한 12국 중 작은 부족국에 불과했던 경주의 작은 도시국가 '사로'를 '신라'란 큰 나라로 바꾼,


진정한 국가 단계로 진화시킨 '내물'. 내물은 성씨는 김씨인데. 


문무왕비를 보면 김씨의 시조는 흉노 투후 김일제라고 나온다. 또 북방 스키타이하고 관련된다.




그리고 내물 때부터 왕호가 이사금이 아니라 '마립간'으로 바뀌는데.


몽골인들은 대족장을 '메르겐'이라 부른다. 메르겐이 마립간이란 한자로 적힌게 아닐런지?




//말을 숭배하여 족장과 함께 순장시킨 마한인들 




마한 한자부터가 馬韓


말 마馬가 들어간다.


고고학 발굴로도 마한의 족장들은 청동으로 만든 말 모양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고대 중국 기록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마한인들은 소,말을 부리지않고 


족장의 장례식 때 소,말을 같이 묻은거 같다.




"소나 말을 탈 줄 모르기 때문에 소나 말은 모두 장례용으로 써버린다."_삼국지 동이전 마한편




그리스 신화의 미노타우르스나 인도 신화에서 소가 신성시되는걸 굳이 거론하지않아도


소는 힘이 세다. 


힘이 센 소를 감히 인간이 부려서 그걸로 논밭을 간다는건 아마 신성모독이었으리라?


마한인들이 소를 숭배했는지는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않아서 알수는 없으나


고대 일본 기록인 일본서기 이런 곳에 보면 금관가야 왕자가 시장에 황소를 데리고가서 금관가야의 여자가 옥玉으로 변해있는줄도 모르고


그 옥을 황소하고 바꿔서 집으로 가지고왔더니 자고 일어나니까 그 옥이 여자로 다시 돌아가있어서 깜짝 놀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정확히 전한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내용이 대충 그렇다. 


삼한 사람들이 옥을 신성시했다는건 동이전에도 나온다. 


황소가 신성시되었다는 말은 없으나 황소가 나오는걸보면 뭐 황소를 제사의식에서 희생제물로 쓰지않았을까. 




그렇다면 마한인들은 왜 말을 부리지않고 타지도않고, 족장의 장례식 때 말을 순장시킨걸까


아마도 마한의 시조는 북방에서 말을 타고 온 스키타이족일수도있다. 


말을 탈줄도 모르던 마한 사람들에겐 북방에서 말을 타고 이랴이랴하는 스키타이족은 마치 미개한 그리스인들이 


말을 타고 이랴이랴하는 스키타이족을 보고 '켄타우로스'다! 이런 것처럼 


공포 그 자체였으리라


시조는 마한을 단숨에 정복하고 마한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혈통이 대대로 이어져오다보니 시조 가문의 힘은 


약화되고 어느새 원주민 족장들의 민주주의식 회의를 통해 선출되는 나약한 허수아비로 전락했을수있다. 




역시 삼국지 동이전 마한편에 그 단서가 적나라하게 거의 대놓고 나온다.




"진왕辰王은 항상 마한馬韓사람으로 왕王을 삼아 대대로 세습世襲하였으며, 진왕辰王이 자립하여 왕王이 되지는 못하였다.


위략魏略: 그들은 [외지外地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한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_삼국지 동이전 마한편




마한의 대왕은 '진왕辰王'이라 불렸다. 진辰은 과거 마한 이전에 남조선에 있던 청동기 국가인데.


위만조선의 멸망 당시 한반도에 거세게 몰아치던 한사군이란 거센 회오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는데.


원주민들의 거센 반발의 결과로 '마한'이란 새로운 연맹체로 다시 부활을 한거같고 


'진왕辰王'은 마한인들이 단합하는 구심점으로서의 대왕이었고 


마한의 대왕의 왕호는 '진왕辰王' 즉 과거의 진국辰國을 기억하자는 깊은 뜻이 있는거 같다.




그런데 이 진왕의 가문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립하여 왕이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시조 가문의 힘은 약화되고 어느새 원주민 족장들의 민주주의식 회의를 통해 선출되는 나약한 허수아비로 전락했을수있다. ..


이건 완전 신라의 화백회의가 아닌가?


어쩌면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록의 박씨 가문 거서간들과 석씨 가문 이사금들은 어쩌면 어쩌면 


그렇다 그들은 어쩌면 마한의 왕들이었을수도 있다. 


경주 도시 국가 사로국의 후신인 신라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의 나라인 마한의 왕들을 은근슬쩍 경주에 살던 대왕들인양


사기를 쳤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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