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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부족의 우두머리를 패자沛者라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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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부족의 우두머리를 패자沛者라 부름. ========== 沛者(패자) : 對盧(대로)를 두면 沛者(패자)를 두지 않고, 沛者(패자)를 두면 對盧(대로)를 두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양자의 지위는 상응하였던 것 같이 보인다. 양자의 起源(기원)을 對盧(대로)는 부족의 長(장)이었고, 沛者(패자)는 군사적 지도자(軍長, 군장)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분명치 않다. 『三國史記(삼국사기)』에 某部(모부) 沛者(패자)라는 기록은 있으나 某部(모부) 對盧(대로)라는 例(예)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양자가 그 원래 성격은 비슷하였으나, 뒤에 對盧(대로)는 중앙정부의 官階(관계)가 되었고 沛者(패자)는 部(부)의 官階(관계)가 되어 桂婁部(계루부) 王室(왕실)과 그 예하의 諸部(제부)간의 차등성에 따른 어떤 면을 반영하는 듯 싶다. ≪參考文獻(참고문헌)≫ 金哲埈(김철준), 「고구려·신라의 官階組織(관계조직)의 成立過程(성립과정)」『한국고대사회연구』1975. ============== // 타이라를 두면 헤이시를 두지 않고   헤이시를 두면 타이라를 두지 않는다... 음? // 요동 안시성 쪽의 요동 고조선 강물은 패수沛水라 불리고 고조선 중심지 낙랑 북쪽의 강물(청천강)은 패수浿水라 불림. 패沛나 패浿나 둘 다 발음이 똑같다. 고구려에서 부족의 우두머리를 패자沛者 라 부른 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타이라... 따이 라... 띠 라... 대방帶方... 평씨平氏... 헤이 시..... ..... 패이 시....  패수... 패라.... 평나..... 평양..... 

할복 문화의 기원은 한반도에 있나?

 할복 문화의 기원은 한반도에 있나?   "헌창이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종자(從者)가 목을 베어 머리와 몸을 각각 다른 곳에 묻었다."  憲昌知不免自死, 從者斷首與身各藏.  _삼국사기 권 제10 신라본기 제10  >   헌덕왕(憲德王)  >   14년 3월18일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다(0822년 03월 18일(음)) 아마 신라 화랑이나 백제 담로 무사도가 기원일 듯. 삼국사기는 유교 기록이고, 삼국유사는 불교 기록이라서 잔혹한 건 가급적이면 안 적으려하니  자연스레 사무라이 자살 돌격이나 사무라이 할복하면 종자가 대신 목 베는 그런 잔악한 문화의 기원이 한반도인걸 증명할만한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듯. ===테마 음악========== https://youtu.be/9PeluiSmHQU?si=KEfWet5FOq_qwe2M   ===================

견훤은 왜구 겐지인가

견훤은 왜구 겐지인가 삼국유사 견훤 탄생 신화 보면 야마토 정권 삼륜산 시조 탄생 신화와 비슷하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본래 이름은 원선(元善)이다. 삼국유사 견훤전에 인용된 [이비가기]란 기록에 따르면,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思刀)註 352의 시호는 백융부인註 353이다. 그 셋째 아들 구륜공(仇輪公)註 354의 아들 파진간(波珍干)註 355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註 356작진(酌珍)註 357이 왕교파리(王咬巴里)註 358를 아내로 맞아 각간(角干)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바로 아자개註 359이다. " 라는데. 견훤의 조상에 진흥대왕의 왕비 사도가 있다는건 견훤 가문이 자신들의 기원을 조작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신뢰하기 힘들다. 다만 견훤의 고조부가 파진찬 선품인데. 파진찬은 해양 무역과 관련된 관직이란다. 견훤이 후백제 정권 창업 당시 해적 능창이나 순천 해양 호족 김총을 끌어들인 것으로 볼 때 그가 해양 세력 특히 일본과 어떤 관련이... 원선(元善)의 원(元)은 일본 발음으로 '겐(Gen)'이다. 견훤... 겐훤......  아자개는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로 보낸 승마술 전문가 '아직기'와 이름이 닮았다. 허.... 그렇다면 아자개, 견훤은 왜구란 말인가? 그렇다면 신라 수도를 불바다 피바다로 만들고 신라 왕을 강제 자살시키고 신라 왕비를 겁탈한 것도 다 이해가 된다.

원나라 쿠빌라이 때 백제 왕이 신하 양호를 보내 조공바쳤다. 원사 세조본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원나라 쿠빌라이 때 백제 왕이 신하 양호를 보내 조공바쳤다. 원사 세조본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테마 음악============ https://youtu.be/onpl_pH-vDw?si=lLUvCs4YzWuOOuHS ================ ========= [四年春正月甲午,陝西行省以開州新得復失,請益兵,敕平陽、延安等處簽民兵三千人,山東、河南、懷孟、潼川調兵七千人益之。丁酉,申嚴平陽等處私鹽之禁。壬寅,立茶速禿水十四驛。癸卯,敕修曲阜宣聖廟。乙巳,百濟遣其臣梁浩來朝,賜以錦繡有差。禁僧官侵理民訟。辛亥,封安肅公張柔為蔡國公。以趙璧為樞密副使。立諸路洞冶都緫管府。癸丑,敕封昔木土山為武定山,其神曰武定公;泉為靈淵,其神曰靈淵侯。簽蒙古軍,戶二丁三丁者出一人為軍,四丁五丁者二人,六丁七丁者三人。乙卯,高麗國王王禃遣使來朝,詔撫慰之。戊午,立提點宮城所。析上都隆興府自為一路,行緫管府事。立開元等路轉運司。城大都。]  "4년 봄 정월 갑오일에, 산서성 행정부는 개주에서 새로 얻은 지역을 다시 잃었다고 보고하며 병력 증강을 요청했습니다. 평양, 연안 등지에서 민병 3천 명을, 산동, 하남, 회몽, 통천에서 병력 7천 명을 추가로 동원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정유일에, 평양 등지에서 민간인의 소금 밀매를 엄격히 금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임인일에는 차속두수의 14개 역을 설립했습니다. 계묘일에는 굽우흥성묘의 수리를 명령했습니다. 을사일에는 백제가 그의 신하인 양호를 조정에 보내왔고, 차별적으로 비단과 자수를 하사했습니다. 승려 관리가 민간 소송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신해일에는 안숙공 장유를 채국공으로 봉했습니다. 조석을 승비부사로 임명했습니다. 각도의 동연도총관부를 설립했습니다. 계축일에는 예전의 무토산을 무정산으로, 그 신을 무정공이라 하고, 샘을 영연으로, 그 신을 영연후라 명명했습니다. 몽골군을 모집하여, 2명 또는 3명의 세대당 한 명씩 군대에 편입시켰습니다. 을묘일에는 고려의 왕 왕족이 사절을 보내왔고, 위로와 격려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무오일에는 궁성 지역의 관리를 담당할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노량해전의 진실

노량해전의 진실 "19일 진인ㆍ이순신이 적병을 노량에서 무너뜨리고 9백여 급을 베었는데, 이순신도 순국(殉國)하였다. 이보다 앞서 사천의 적의 괴수 의홍(義弘)과 남해의 부괴수 평조신(平調信) 등이 행장과 의지의 부름에 따라 군사중에 노약자들과 포로된 남녀를 배에 싣고 먼저 떠나게 하고, 자신이 백척을 거느리고 밤 조수를 이용하여 나와 응원했다. 수군 복병장(伏兵將) 경상 우수사 이순신(李純信)이 거룻배로 달려와 보고하였다. 진인과 이순신(李舜臣)이 여러 전선을 거느리고 좌우협(左右協)이 되어 아군은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주둔하고, 명군은 곤양의 죽도(竹島)에 주둔하여 닻을 거두고 변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함밤중에 적선이 광주(光洲) 산도(山濤) 사천 남해로 오는 수로의 이름이다. 로부터 구름이 합치듯 안개가 모이듯이 모여들어, 곧장 노량을 지나 막 왜교로 향하려는데, 한 번 바라 소리가 울리니 포 소리와 북 소리가 겸하여 진동하고, 아군과 명군 양군이 돌발하여 좌우에서 엄습하니 살과 돌이 섞여 떨어지고, 불붙은 섶을 마구 던져서 허다한 왜선을 태반이나 불태웠다. 적병은 목숨을 걸고 혈전하였으나 형세가 지탱할 수 없어 바로 물러가 관음포(觀音浦)로 들어가니 날이 이미 밝았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올라가 추격하며 죽이는데 적의 포병이 배 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을 향하여 일제히 쏘아 이순신은 총알에 맞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급히 장좌(將佐)에게 명하여 방패로 신체를 지탱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비밀로 하여 발상(發喪)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에 그 아들 이회(李薈)가 배에 있다가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북을 울리며 기를 휘둘렀다. 낮도 되지 않아서 적의 배는 거의 다 진멸되고 물에 뛰어들어 죽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으며, 도망하여 벗어난 자는 겨우 50여 척이었다. 아군은 수급을 거두어 진인에게 다 바쳤다. 우리 배는 함평(咸平)의 전함이 적에게 불탔다. 한참 싸움이 무르익었을 때에 행장 등이 철병하여 몰래 묘도의 서량(西梁)을 따라 나...

온돌 기술을 한민족이 만든 이유에 대한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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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돌 기술을 한민족이 만든 이유에 대한 내 생각 고대 중국 한나라의 하북성,산동반도,하남성에서 돌방 무덤이 요동 현토 낙랑 대방의 중국 군현들의 호족들에게 전파됨 고대 중국에선 노인이 노망이나 치매나 정신병 들면 사망 판정 내리고 그 안에 유폐시킴 그러면 추워 죽음 그러나 조선 피가 섞인 요동 현토 낙랑 대방의 '군자 다이묘' 즉 호족들은 온돌 기술을 발명해 최초의 고려장을 시작했고 이 풍습은 돌방 무덤 양식과 함께 고구려,백제,일본으로 전파됨 '군자 다이묘'는 거의 왕급의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로 자신들만의 농장들을 보유하고 군사를 갖추고 중앙 정권과의 유대 관계를 맺어 각지의 지방 정권들이 되었는데 이들의 등장은 중국 삼국지 시대였고 이미 그런 존재들은 기원전 50년 쯤 북한 낙랑에서 왕씨 호족으로 등장했다. 사마씨 진나라는 군자 다이묘 사마씨가 세운 나라였다. 그러나 군자 다이묘들의 권력을 통제치 않고 왕실의 내분으로 인해 자신들이 그동안 용병으로 사용해오던 북방 기마민족들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군자 다이묘들은 북방기마민족들이 세운 유사 중국의 신하가 되거나 난징으로 도피한 사마씨에게 가거나 고구려가 간접 지배 중인 요동 현토 낙랑 대방으로 가서 고구려의 신흥 귀족 세력을 형성한다.

당태종 침략군이 50만이란 설이 있음.

 당태종 침략군이 50만이란 설이 있음. ========== https://youtu.be/09hW4O-ngnI?si=QVZtEY_zOpwt_gp5   ========== 부흥카페랑 김용만 고구려사 연구 카페 등에서 자주 논의되던건데. 당태종의 침략군 20만은 싸그리 병사고  그 20만의 양식을 책임지고 양들 소들을 끌고오는 하인들이 그만큼 더 있었음. 그래서 다 합치면 4~50만 정도? 그럼 서기 1010년 고려거란전쟁 당시 '요 성종(遼 聖宗)'의 침략군이랑 숫자가 똑같음. 당태종이 죽음의 늪지 요택을 통해 퇴각할 때 병사 중 전사자는 적은데. 소,말의 90%가 뒤졌다고 나옴. 그 말은 하인들 수십만이 소,말과 함께 죽음의 늪지 요택에서 무수히 뒤졌다는거. 즉 고구려 안시성주,연개소문이 추격한거. 그리고 병사 중 전사자가 적다는 소리는 싸워서 죽은거보다 죽음의 늪지 요택 건너다가 눈보라 쳐맞아서 얼어 죽거나 고구려의 추격으로 인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리일수있음.  서기 645년 당태종의 침략 전쟁은 당태종의 개참패로 끝난거. 서기 1010년 고려거란전쟁 역시 중국 기록들 보면 살아돌아간 거란군은 '요 성종(遼 聖宗)'을 포함 수십명에 불과하다고 나옴. 요 성종의 개참패였음.

강조가 개쳐발린 이유

강조가 개쳐발린 이유 거란 기병 20만(정예기병 1,말탄 타초곡 1, 말탄 수영포가정 1로 구성되어있음.) 이 그대로 검차를 들이박을줄은 모름. 걔들 이기려면 배고파서 돌아갈 때를 노려서 두 강물 사이 질퍽질퍽 발이 푹푹 빠지는 늪같은 곳 즉 귀주 일대에서 쳐야지 평지에서 싸우면 아무리 검차 있어도 100% 질 수 밖에 없음.  아마도 귀주대첩은 검차보단 연노 부대 장창 부대로 싸웠을듯 

서기 3세기 부여족 선비족 기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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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동천왕 시절 부여족 선비족(비려=비천한 구려) 기마병 비려(거란의 조상=선비족)=비천한 구려(나의 가설)=선비족=현토군 고구려현 소속 흉노 토벌 담당 고구려 출신 징용노예들이 탈주해서 동호 족이랑 피 섞인 것들(내 추정)

석탈해가 바로 바다를 건너온 트로이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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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탈해가 바로 바다를 건너온 트로이족이다. 원삼국시대 토기 트로이 토기 석탈해의 '석'은 성씨다.  '탈해'가 중요하다. '탈해'는 '토해'라고도 적힌다고 삼국사기 신라 탈해이사금본기에 나온다. 석탈해는 삼국사기,삼국유사를 종합하여 읽어보면 삼국사기에선 금관가야 해변에서 살다가 쫓겨난 인물로,  삼국유사에선 금관가야 김수로왕과 금관가야에서 티격태격 싸우다 사로국(신라)로 튀어버린 인물로 나온다. 즉 김해 구야한국(금관가야)와 티격태격 싸우던 김해 가까이 해변 탈해 세력은 바로 부산의 '독로국'이다.  서기 1~3세기 구야한국이 일본열도로 철기 문화,토기 문화를 전파할 때 중간 항해로를 방해하던 나라가 바로 독로국이었다.  탈해 = 독로 = 트로이  탈해 탄생 신화를 보면 탈해는 바다에서 떠내려온 궤짝인데 그 궤짝 속에 아이가 있었고 궤짝을 까치가 인도했다고한다. 트로이 전쟁 신화에서 트로이목마는 트로이 성 안으로 들어왔고 목마 안에는 트로이를 침략하려는 오디세우스 장군과 군인들이 있었다.  트로이전쟁은 사실이나 트로이목마는 신화전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왜 하필 트로이목마일까. 그것은 트로이목마는 트로이족들에게 엄청 중요한 토템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상자나 나무목조품 속에 넣어져 성 안으로 인도되어 그 성의 주인이 된다.. 이것이 바로 트로이족의 건국신화였는데. 그리스인들이 이걸 멋대로 왜곡시킨 것같다. 삼국유사 석탈해 신화를 보면 석탈해가 말하기를 "나는 본디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다. 그 나라의 왕비에게서 알로 태어났으므로 버림을 받아 이곳에 닿았다."... 라고 말하였다. 용성국(龍城國)은 어디인가. 아마 드래곤의 나라  트로이가 아닐까.  사실 트로이목마는 드래곤 모습의 괴상한 괴물 목조상인데 이를 그리스놈들이 말이라 표현한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석탈해가 밤에 호공의 집에 숯을 묻어두고 나중에 호공의 집에 다시 찾아와 이건 원래 내 집이요. 하며 호공의 ...

진번이 연나라한테 개쳐맞고 커맨드센터 이동함

진번이 연나라한테 개쳐맞고 커맨드센터 이동함 전성기 연나라가 진번 조선을 공략해 복속시켰다. - 사기 조선열전 전성기 연나라가 일찍이 진번 조선을 공략해 복속시켰다. - 한서 夫燕亦勃碣之閒一都會也南通斉趙東北邊胡上谷至遼東地踔遠人民希數被冦 大與趙代俗相類而民雕捍少慮有魚塩棗栗之饒北鄰烏桓夫餘東綰穢貉朝鮮真番之利 연(燕)은 발해와 갈석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 북쪽으로 오환 부여와 이웃해 있고 동쪽으로는 예맥 조선 진번과 교역하는 이점이 있다. 사기화식열전 上谷至遼東地廣民希數被胡寇俗與趙代相類有魚鹽棗栗之饒北隙烏丸夫餘東賈真番之利 상곡에서 요동에 이르는 지역은 인구가 적고 오랑캐가 득실거린다. ... 북쪽은 오환과 부여가 있고 동쪽으로 진번과 교역하는 이점이 있다. 한서지리지하 위 사료들을 볼 때 아무리 봐도 진번의 위치는 요북이나 요동지역이다. 후기 한나라(후한 즉 한나라 시즌 2) 때 '응소'가 한서 지리지 현토군 편에 단 주석을 봐도 현토는 본래 진번 조선 오랑캐라고 나온다. 현토는 졸본 오녀산성~압록강 유역이다. 그렇다면 역시 진번의 본래 위치는 요동이나 압록강 유역~ 그니까 진번이 연나라한테 쳐맞고 커맨드센터를 황해도로 이동한거잖아 빠가야로 진번이 황해도나 한강 유역인 이유 위만조선이 진번,진국이 한나라에 조공 가려는걸 가로막았다잖아 그러니 진번은 황해도거나 한강 유역이지    후한 시대 응소가 현도가 본래 진번국이라 함은  진번국의 기원이 고구려란 것이리라  

「반도일본어족」설의 사료적 근거_'산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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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권12 해내북경 "큰 연나라  땅에 있는 개국의 남쪽은 왜 이고 그 북쪽의 왜는 연나라에 속했다" 개국은 개마국이다. 북한의 개마고원에 있던 나라다. 조선은 넓은 지역(요서,요동,북한 땅)의 이름에 불과하고 그 지역에 있던 정치체나 종족은 산융 ,고죽 ,영지, 도하, 발, 숙신 인데 산해경을 보면 요동은 물론 한반도에도 '왜'라는 세력이 있던 것으로 나온다. 「반도일본어족」설의 사료적 근거가 여기에 있었구나.

수양제가 고구려 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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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가 고구려 친 이유 // 수양제가 고구려 친 이유 수서 양제 본기의 수양제의 고구려 정벌 조서. 고구려가 존나 해적질을 해대며 백성들을 데려갔고  주변 나라들이 중국에게 조공 바치려고 배 보내는걸 죽이고 털고 그랬단다. 이걸 어떻게 참아? 그리고 고구려 쟤들 한나라 때 식민지 현토 낙랑 땅인데 되찾자! 하며  수나라가 고구려로 쳐들어오다...... 한국 사극이 하는 말하곤 전혀 다르다... 고구려가 먼저 존나 개겨댔네? 흠... 삼국사기 최치원전 보면 최치원이 말하길 고구려 백제가 전성기가 강병 100만으로 연,제,노,오,월을 털어대서 중국의 좀덩어리 였다고 한다. 연나라는 요서~베이징 이고  제나라,노나라는 산동반도 오나라,월나라는 난징 일대  즉 중국 동해 해변가들인데.. 고구려,백제가 해적질을 존나 해댄거같다. 물론 해적만으로 동해 해변들을 조지기는 힘들다. 결국 그 동해 해변들의 지방 호족이나 어민 세력들을 포섭해서  해적질을 해대며 중국의 중앙 정권이 세금 거두는거나 무역을 하는걸 방해한거같다.  성리학이 없던 시절, 아무리 중국이라도 지방 호족 세력들 일일히 컨트롤하기 힘들거고, 5호16국으로 분열되었던 남북조 시대에는 더더욱 그랬을거. 근데 수양제 때에도 고구려가 여전히 해적질을 하니 수양제께서 개빡치심. 

비류계 마한과 대립한 온조계 마한 신지 온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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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계 마한과 대립한 온조계 마한 신지 온조의 모습 비류계 마한은 감해비리국. 초고왕,구수왕은 각각 한강 유역 마한 구다라(=백제伯濟)와 열도 규슈 마한 구노국(백제 아신왕 당시 키노츠노노스쿠네의 나라)의 대족장들 이었을 것이고, 하도 유명해서 후에  부여계 해적인 여구와 그의 아들 여수가 각각 근초고,근구수(초고 2세,구수 2세) 이럴 정도로  초고,구수는 매우 유명한 자들이었던듯 하다. 일본서기 보면 천손 니니기의 두 아들이 서로 대립하는 신화가 있는데. 비류 vs 온조와 비슷하다. 

신라구가 사실 신라에서 달아난 백성들이 일본열도 지방 해변가에서 해적 파티 결성한거 아닐지?

신라구가 사실 신라에서 달아난 백성들이 일본열도 지방 해변가에서 해적 파티 결성한거 아닐지? 혹시... 그래서... 미나모토 가문 조상 요시미츠가 신라 신사에서 성인식을.... 게다가 미나모토 가문의 씨족 신은 '하치만'인데. 하치만이 하타씨 씨족 신인데. 하타 씨가 신라계다. 그리고 하치만도 신라계 신이라고 전해 옴. 미나모토 가문은 천황가와 신라계 계집이 서로 섹스해서 그 사이에서 태어난 별종일수도 있다! https://youtu.be/5xwnb8AJo9c?si=71ImOrvtHb4PjT8C  

조로아스터=다니엘이고, 동방박사는 조로아스터 미트라교의 현자들이다

 조로아스터=다니엘 이고, 동방박사는 조로아스터 미트라교의 현자들이다. ==테마 음악====== https://youtu.be/9PeluiSmHQU?si=FXyu6oPP652L94Od  ============= 유대교가 조로아스터교를 따라한게아니고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의 스파이식 파생 분파다.  기마민족 '파르티아'(말을 타고 가며 뒤로 돌아 활을 쏘는 무시무시한 자들. 유대인을 3년 반 동안 괴롭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8번째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를 두려움에 떨게하여 홧병 걸려 사망하게 했다. )는 조로아스터교 현자들을 스파이 삼아  팔레스타인을 정탐케해서 로마의 위협에 대비했는데 조로아스터교 현자들은 구세주 미트라(이름이 '친구'란 뜻)의 베들레헴 탄생에 더 관심 많았다. 미트라는 조로아스터교 신화에서 악마들을 물리치는 완전 젤다의 전설의 '링크(Link : 연결)'같은 자인데. 미트라는 '언약'의 신이고 그 이름의 뜻이 '친구'이며 힌두교에선 마이트레야로 , 불교에선 한자로 '미륵'으로 숭배되었다.    당나라 복두 단령과 훌렁훌렁한 망또같은 옷을 입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니 당할 자가 없었다. 하얀 소로 변장한 큰 악마를 잡아 목에 칼을 푸욱 찔러 넣어 죽이니 혼돈이 죽고 세상이 창조되었다. 다니엘은 바빌론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스 알렉산더 셀레우코스 로마제국의 등장과 구세주의 탄생과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전세계의 종말을 예언했다.  헤롯 왕의 통치 마지막 해에 2명의 구세주가 태어나니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적그리스도인 이스카리옷 유다이며 이스카리옷 유다의 별명이 '친구'이다. 아마 둘은 얼굴이 닮았을거다. 

근구수는 지 아비의 부인 신공황후를 지 아내로 삼음

근구수는 지 아비의 부인 신공황후를 지 아내로 삼음 목라근자랑 함께 열도로 가고 나라 통치는 진씨 가문에게 맡김 진씨(眞氏) 가문(=하타씨=궁월군=구월간의 당골 = 단군(壇君))은 마한 목지국(=월지국=카자흐스탄 출신) 진왕 가문이다  여구(=오구나 타케루 = 여구 근개루 = 근초고 = 초고 2세),근구수(=근귀수=여수=중애 천황=쥬아이 덴노) 이 두 부자(父子)는  진씨 가문을 모시는 졸개들이다. 백제는 100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세운 나라로 백잔 즉 100여개의 잔챙이 나라들로 구성되어있다.(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 열도의 야마토 연맹(왜(倭)30개국) 총 108개 )  이들은 바다를 자유롭게 건너며 난징,산동,요서 어디든 가는 해적들이며 왜구가 중심이다. 

낙랑군 대방군이 서기 313년까지 건재했다면

 낙랑군 대방군이 서기 313년까지 건재했다면 ====테마 음악========= https://youtu.be/arrLDGdiF70?si=VIq6t8Xhfnhwbd28   ================= ===사료============== 서기 313년 10월(음력) ) [十四年, 冬十月, 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14년(313) 겨울 10월에 낙랑군(樂浪郡)을 침략하여 남녀 2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_삼국사기 > 고구려본기 제5 > 미천왕(美川王) > =================== 낙랑군 대방군이 서기 313년까지 건재했다면 왜 마한 진한 변한 왕들과 신지들이 서기 3세기 후반에 평안도,황해도로 안 가고  도대체 왜 요동반도의 동이 교위한테로 가겠냐? 그냥 평안도 황해도의 낙랑태수,대방태수 만나면 될 것을? 서기 3세기 후반 당시는 사마씨 진(晉)나라가 오나라 따먹을 무렵인데 

내가 보는 수능,내가 보는 디씨 마갤과 부흥 카페와 역개루 카페

 내가 보는 수능,내가 보는 디씨 마갤과 부흥 카페와 역개루 카페 ======테마 음악=========== https://youtu.be/9PeluiSmHQU?si=i0b5kOi4OlFpx05m ======================= 수능 시험 동아시아 문제 보니까 홍산문화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타오쓰문화 유물 중에서 뭘 고르는 문제 있는걸 내가 봤었음 그걸 서점에서 책 사서 봄 동아시아사 문제집 그런거 보면 그 수능이라는거는 그냥 문제 풀이로 하면 안되고 싸그리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잘 풀수있는거 근데 그런 요령을 모르니까 다들 등신같이 무슨 비싼 학원 가서 전한길같은 병신같은 천박한 놈이 쓰는 칠판이나 보면서 그래 그래 이거 들은건 공부 잘할수있겠지 이러는거 등신들을 가지고 노는거임. 솔직히 홍산문화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타오쓰문화 룽산문화 이런 유물들 보기 그림에 넣고 문제 설명 대충 넣고 고르세요 혹은 ㄱㄹ ㄱ,ㄹ ㄴ,ㄷ 이렇게 고르세요 이러면 그게 암기로 되나? 그걸 존나 좋아해야지 인간들이 병신임 대학교라는건 개나 소나 올라와서 물 흐리지못하게 '컷'하는거고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들 혹은 지들이 공부 잘한다고 착각하는 애들이 만든 디씨 마갤이나 역사 커뮤나 네이버 부흥카페나 네이버 역개루 카페 이런데 보면 나같은 사람이 와서 뭔 글 쓰면 무슨 카페 규칙 위반이니 뭐 무슨 관련 없는 글을 썼다느니 그리고 글 4개 썼더니 '도배' 이러고.  진짜 도배를 보지못했나? 싶고. 그게 권위주의라기 보다는 일종의 대학 문화같음. 그 대학이라는 곳 자체가 뭔가 우리는 상류라는 느낌을 즈그들끼리 가지면서 뭔가 즈그들끼리 모이는 그런 느낌 있잖음. 시험 점수 낮아서 여기 오지 못한 하등한 것들하곤 우린 달라 풋 피식 이러면서. 근데 내가 갑자기 그 앞에 스르릉 나타나서 만주 서쪽 요서 레드마운틴의 북쪽 소금 강물 시라무렌하의 상류에 사는 비려(=선비)가 레드마운틴의 족장 대선우 모용씨가 한漢족 군자들만 끼고 놀고 자기들은 무슨 야만족 취급하...

위서라고 해서 무조건 무시할 수 있을까?

위서라고 해서 무조건 무시할 수 있을까? 천황가가 뭔가 자기들이 퍼트리고싶은 비밀이 있는데 원본 책을 보여주면 좀 뭔가 골치아픈 일이 생길거같으니 대한제국도 그렇고 일본제국도 그렇고 도쿠가와 막부도 그렇고 자기들이 뭔가 스파이 보내서 알아낸 비밀이나 자료들 압수해서 자기들을 자기들대로 파악한 비밀이 있는데 그걸 공개할 경우 위서란 방법을 사용하는듯하오 대한제국 교과서 보면 47대 단군 얘기가 나오오 근데 출처가 없음. 그리고 일본제국은 뭐 저런식의 위서를 내보내는거같고, 도쿠가와 막부는 청나라에 갔었던 일본 어민(사실은 스파이일듯)이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금사 별본'이란 책을 가져옴 그 책에 보면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징기스칸이란 내용이 나옴 그리고 청나라 황제 보르지긴이 그 후손이고 건륭제도 이를 알고있다고하오 건륭제가 만주원류고 쓴 사람인데 부여를 청나라의 조상으로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