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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엔 공룡이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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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엔 공룡이 나오나요?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다섯번째 날에 새들과 '바다 괴물들'을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바다 괴물의 히브리어는 '탄닌'인데. 용龍이란 뜻입니다. 공룡의 조상은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공룡들 중에는 바다 괴물도 있고, 공룡은 새로 진화했죠.  그리고 공룡은 공포의 용龍입니다. 성경은 다섯번째 날이 시작된 후 낮이 되고 밤이 되고 아침이 밝아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아침을 옛 시대는 지나가고 갈아엎고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으로 해석해본다면 공룡의 멸망을 암시하고있을수도있죠.

북부여와 동부여의 차이

 대무신이 공중분해시킨 동부여의 정체 글쓴이 : 책사풍후 서기 3세기에 적힌 고대 중국 기록 '삼국지 동이전'의 부여편을 보면 부여는 건국 이래로 단 한번도 패망한 적이 없는 강국이라고 나온다.  삼국지 동이전이 적힐 당시의 부여의 왕은 '간위거'이고 고구려의 왕은 고구려의 11대 왕인 위궁(동천왕)이다. 근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고구려 3대 왕 무휼(대무신)이 동부여를 멸망시켰다고 나온다.. 건국 이래로 단 한번도 망한 적 없다는데 이미 망했었네? 응 이게 어찌된거냐? 사실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의 '부여'하고  대무신한테 쳐맞아 망한 부여는 서로 다른 부여이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의 부여는 북北부여이고  대무신한테 쳐맞아 망한 부여는 동東부여이다. mbc 주몽 사극이나 kbs 바람의 나라 사극에서는 부여 왕 금와,부여 왕자 대소가 주몽,유리,무휼과 갈등 관계인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사극들은 역사 왜곡인게... 주몽,유리,무휼과 갈등 관계를 빚은 부여는 '동東'부여다. 광개토비를 보면 주몽은 동부여에서 내려온게아니라 북부여에서 내려왔다고 적혀있다. 주몽은 동부여의 왕자가 아니라 북부여의 왕자인 것이고  동부여의 금와왕의 양자였던 적도 없고, 따라서 금와의 아들인 대소하고는 딱히 원수 관계가 될 일은 없는 것이다. 북北부여는 뭐고 동東부여는 뭐란 말인가... 삼국유사를 보면 부여는 해모수가 세웠다. 해모수는 하늘나라 임금인데. 하늘나라를 떠나서 하늘에서 용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만주의 부여 땅으로 내려왔다. 무슨 외계인이냐.... 그리고 나라 이름을 '부여'라 하였다. 그리고 해모수는 얼마간 통치하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여의 2대 왕은 해부루가 되었다. 해부루의 신하 아란불은 부여의 국상(총리)이 되어서 해부루를 보필했다. 이 아란불이 주몽 사극에선 부득불로 나온다...(야인시대에서 미와 경부 연기한 사람) 근데 어느날 아란불이 꿈을 꿨다. 꿈에 해모수가 나타나...

신숭겸의 본명 '미노야마'

 신숭겸의 이름의 충격적 정체?  신숭겸..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카게무샤가 되어서 왕건 대신 목 잘려서  나무함 안에 목이 들어갔다. 견훤 : 왕공 어쩌다 목만 오셨소? 견훤 : 왕공 나와 얘기 좀 함세~~~ 스윽  견훤 : 이끼! 이게 뭐냥께!  괴 - 굉  -분한 눈을 감지못한 신숭겸의 머리통- 근데 신숭겸의 본명은 삼능산三能山이라고 삼국사기 궁예전에 나온다. 삼능산..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미노야마다. 삼三은 '미'라고 읽고 능能은 '노'라고 읽고 산山은 '야마'. 삼능산三能山.... 이름 자체가 뭔가 일본 느낌 나는데. 그렇다고 신숭겸이 일본인일리는 없다. 그래도 이름이 특이한건 사실이다. 가야연맹의 한 나라인 대가야. 대가야는 삼국지 동이전 시대엔 '미오야마'라고 불렸다. 이것도 일본스럽네... 일설에는 미오야마 나라라는 말을 줄여서 '미마나(任那 : 이 글자의 현재의 한국식 발음은 '임나'인데. 그 당시엔 '미마나')'가 되었고  이것이 가야 전체의 별명이 되었다고 한다. 미오야마 .... 미노야마 ........ 신숭겸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은 미오야마국 왕족이었을까? 신숭겸은 평산 신씨다. 하지만 신씨란 성을 왕건이 하사한 것이다. 신숭겸이 성씨 하사받기 전에는 그냥 '삼능산'이었다. 성씨도 없는 그냥 동네 힘센 사람이었던거 같다. 

기자조선 얘기는 뻥인가 사실인가

 기자조선 얘기는 뻥인가 사실인가 진시황이 분서갱유했으니 기자조선 얘기가 한나라 기록 때 부터 나오는건 당연한 것. 그리고 기원전 10세기에 기후(기 자)랑 여러 상나라 집단들이 만주 서쪽 요서 지방에 청동제 사그릇들 가지고 우루루 와서 구덩이 파고 청동제사그릇들 묻은 것도 발굴되었음(객좌현 구덩이). 그리고 기자가 주나 라의 제후 되길 거부하고 조선으로 갔다는 점이나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이 최초로 나타나는게 기원전 9세기 요서에서부 터이니 요서가 고조선 땅이었냐 아니냐를 떠나서 기자가 고 조선이랑 어느정도 연관있어 보이는 요서로 온건 사실.

대무신이 공중분해시킨 동부여의 정체

 대무신이 공중분해시킨 동부여의 정체  대무신이 공중분해시킨 동부여의 정체 글쓴이 : 책사풍후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 보면 부여는 건국 이래로 단 한번도 패망한 적이 없는 강국이라고 나온다. 대무신이 패망시킨 부여는 북부여가 아니라 동부여임은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도 나온다 동부여... 본래의 부여(하얼빈 장춘)에서부터 동 쪽으로 이사간 또 다른 부여인데 동쪽으로 해변이 있는 비 옥한 들판 가섭원이라고도 적혀있다 대무신이 패망시킨 동부여는 광개토 시절의 동부여랑은 다 른거다(백제 개로왕 시절의 남한과 지금의 남한이 한자는 같지만 다른 것처럼) 그렇다면 대무신이 공중분해시킨 동부여는 정확히 어떤 실 체일까 그냥 고구려 계루부 왕실이 지어낸 가상의 판타지같 은 나라에 불과하고, 부여에서 갈라져나온 고구려의 열등감 이 반영된 가상의 샌드백에 불과한걸까?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을 보면 고구려는 5부족의 연맹이 고 그중 '소노'란 부족이 고구려 왕권이었는데 후에 힘이 쇠 약해져서 왕권이 '계루'로 옮겨갔다고 한다 '소노'는 삼국사기에 '비류' 부족국으로 나온다 망명객 떠돌이에 불과한 주몽이 활쏘기 시합과 협박 1번으 로 비류국을 단번에 복종시켜서 먹었다고 하지만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급의 개소리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을 보면 주 몽은 북부여에서 남쪽의 졸본으로 내려왔다 졸본에 정착 후 그 일대를 다스리는 '부여 왕'이란 자에게 장가들었는데 주몽의 부여 왕의 세 딸 중 하나에게 장가들었고 그 여자가 바로 소서노라고 한다 이 '부여왕'이 연타발인지 비류국 왕 송양인지 불투명하다 연타발도 송양도 둘 다 설화적 존재 느낌이 난다 혹 주몽을 사위로 삼은 그 부여 왕은 북부여 왕이 아니라 동부여의 왕이고 동부여는 소노부가 아닐까

고구려의 아노스 볼디고드

 고구려의 아노스 볼디고드 태조왕은 이름이 '궁'인데 태어나자마자 눈을 번쩍 떴는데 마치 악마가 사람으로 태어난 존재같다 느꼈는지 나라사람 들이 미워하며 죽이려하였다  _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  그러나 어머니인 태후가 섭정 하니 누구도 못 개겼다 _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편 이때에 비로소 소노부에 있던 왕권 이 계루부로 옮겨왔다고한다 _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  그래서인지 '태조太祖'  건국자에 붙여지는 시호 '태조'가 이 자에게 붙는다._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왕편  고구려는 5부족이 연합한 연맹이다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 그중 소노란 부족이 고구려 전체를 다스리는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점점 쇠약해지다가 계루부한테 왕권을 뺏겼다고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은 적고 있다. '소노' 부족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엔 '비류' 부족으로 나온다. 비류... 주몽의 아내 소서노의 아들이 '비류'가 아닌가?  그러고보니 소서노는 '소노'와 발음이 비슷하다.  // 궁宮 그러니까 태조는 계루부 출신이다. 그의 이름 궁宮은 이름부터 궁궐이다. 그래서 이름부터 그가 고구려 연맹의 연맹장 자리가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바뀌면서 새로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는 것을 아주 깊게 암시하고 있다. 근데 처음부터 이름이 궁궐이었을리가 있겠는가. 이건 그가 왕위에 오르고나서 주어진 이름일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그의 어렸을 때의 이름은 어수(於漱)로 나온다. 마치 미나모토 노 쿠로 요시츠네의 어릴적 이름이 우시와카마루인 것처럼  성인 이름과 어릴 때 이름이 따로 따로인 것이다. 태조왕의 아버지는 '재사'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재사는 '고추가'란 직위에 있었고 그는 '유리왕'의 아들이라고 한다. 유리왕은 고구려 1대 왕이라고 전해지는 '주몽'의 아들이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는 고구려의 2대 왕이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북위는 장수왕에게...

고구려인들은 단군왕검의 존재를 알았나?

 고구려인들은 단군왕검의 존재를 알았나? 삼국사기 보면 고구려 동천왕이 관구검에게 쳐발린 후 수도 환도성 내다버리고  평양으로 천도했는데 평양=선인(신선 혹은 먼 옛날 사람이란 뜻) 왕검의 저택   이라고 적혀있다.  고구려 수도인 북한 평양이 왕검의 땅이라는 깊은 기억이 뿌리 깊이 내려있었고 북한 평양 지역 주민들은 고구려 수도가 되기전부터 '왕검'이란 자를 자신들의 조상 혹은 지역의 깊은 전통의 산신으로  여기고있었을수 있다. 근데 고조선 말기(위만조선 시대) 고조선의 수도는 '왕험성' 혹은 '왕검성'이라 불렸는데. 왕험王險 왕검王儉 글자가 비슷하다. 그래서 둘 다 같은 인물을 말하는듯하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수도의 이름을 '람세스의 집'이라 불렀다.(오늘날의 '칸티르') 이런걸보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 혹은 왕험성 역시 시조의 이름을 딴 것이고  적어도 위만조선 시기에 고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시조를 '왕검' 혹은 '왕험'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단군왕검 신화가 고려시대 중기나 후기에야 형성되었다는 기존의 설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으로 만든 고구려 지배층들은  단군 혹은 왕검이란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었을까? 고구려가 왕검이란 신을 숭배하거나 어느정도 존중이라도 해줬는지는 고구려 시대 기록이 남아있지않아서 모른다.  어쩌면 사당을 차려주고 제사는 지냈을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편에 "평양은 왕검의 저택이다."라고 나오는게 아닐까?  // 중국 북부 왕조가 고구려와의 깊은 교류 끝에 적은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 지배층이 섬긴 신들이 나오는데. 그 신들 중엔 태양신도 있고 달신도 있고 별자리 신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시시하니 제껴버리면 그만인데.  그런데 주목할만한 신들의 이름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기자신,가한신 인...

선화봉사고려도경의 고려의 패딩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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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봉사고려도경의 고려의 패딩 갑옷   "갑옷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마치 봉액(逢掖)처럼註 006 보이는데 이상한 모습이다.鎧甲, 上下連屬, 制如逢掖, 形狀詭異."_선화봉사고려도경 전체 원문  仗衞一 仗衞一 臣聞 高麗王城仗衞, 比他郡最盛. 蓋驍勇萃於此. 當中朝使至, 盡出之, 以示榮觀焉. 其制, 民十六以上, 充軍役, 其六軍上衞, 常留官府, 餘軍皆給田受業. 有警則執兵赴敵, 任事則執役服勞, 事已則復歸田畝, 偶合前古鄉民之制. 初高麗在魏世, 户不過三萬, 至唐高宗下平壤, 收其兵乃三十萬, 今視前世, 又增倍矣. 其留衛王城, 常三萬人, 迭分番以守. 制兵之略, 軍有將, 將有領, 隊伍有正, 步列有等, 列爲六軍, 曰龍虎神虎興威金吾千牛控鶴. 分爲兩衞, 曰左衞右衞, 别以三等, 曰超軍猛軍海軍. 無黥墨之制, 無營屯之居. 唯給使於公, 以衣服爲别而已. 鎧甲, 上下連屬, 制如逢掖, 形狀詭異. 金花高帽, 幾及二尺. 錦衣青袍, 緩帶垂胯, 蓋其國人質侏儒, 特加高帽錦采, 以壯其容耳. 今繪圖, 各以名色列之于後.

고려 무인시대와 겐페이 시대 인물 비교

 고려 무인시대와 겐페이 시대 인물 비교 정중부    타이라 키요모리  이의방    키소 요시나카 경대승   미나모토 요시츠네 명종   고시라카와  이의민   ? 두경승   ? 최충헌  미나모토 요리토모  김준  호죠 요시토키  임연   ? 이의민 두경승 임연 빼고는 딱딱딱 비슷함  시기도 비슷하고 행동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고  배후에서 역사를 조종하는 루시퍼의 장난이 틀림없음.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의 미스터리한 기록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의 미스터리한 기록  "고구려(高句麗)는 요동(遼東)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朝鮮)·예맥(濊貊)과, 동쪽은 옥저(沃沮)와, 북쪽은 부여(夫餘)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환도(丸都)의 아래에 도읍 하였는데 면적은 사방 2천리가 되고 호수(戶數)는 3만이다."_삼국지 동이전 고구려편 고구려의 남쪽에 조선이 있단다. ㄷㄷㄷ  낙랑이라고 적거나, 낙랑군 조선현이라고 적으면 모를텐데. 그냥 대놓고 '조선'이라고 적는게 미스터리하다. 보통 '낙랑군' 하면,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 혹은 군현이라 보는게 통설이다. 삼국지 동이전은 서기 3세기 후반에 적혔고, 고조선의 멸망과 낙랑군 설치는 기원전 108년이다. 그럼 대충 40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건데. 그런데도 고구려의 남쪽을 '낙랑'이 아니라 '조선'이라 적는 것이 미스터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