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 당시 진씨 가문의 정체

근초고 당시 진씨(眞氏) 가문의 정체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편을 보면 근초고왕 초기 20년은 거의 사실상 진(眞)씨 가문이 다스린 거로 나오고 근초고 통치 기록은 대략 20년 정도 공백으로 되어 있다. 진씨 가문... 삼국사기 백제본기가 후대 기록이라는걸 감안할 시, 


과연 근초고 초기에 '진씨 가문'이 '진씨 가문'이라 불렸을까?

근초고 통치의 후반기는 서기 4세기 후반. 근초고가 즉위한건 서기 4세기 중반인 서기 346년이다.

'백제(百濟)'란 나라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건 서기 372년 난징 정권의 황제 '사마욱'에게 조공바치는 때부터다.

그전엔 백제가 중국에 조공을 바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즉 기원전 18년 백제 1대 족장 온조 때부터 서기 346년 백제의 족장 '계'가 죽을 때까지(1.온조, 2.다루, 3.기루, 4.개루 ,5.초고 ,6.구수, 7.사반, 8.고이,9.책계 ,10.분서 ,11.비류 ,12.계 이 자들이 실제로 실존했다고 100번 양보해서...)  심지어 백제의 13대 왕인 '근초고'의 통치 후반기인 서기 372년에 이르기까지 백제는 중국에 조공을 할 정도의 추진력은 커녕 힘도 없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혹자는 그냥 조공을 안 바친게 아닐까? 라고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서기 3세기 후반에 적힌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백제는 한자로 百濟가 아니라 伯濟라고 나온다.

이는 매우 큰 차이다. 百濟는 100+제濟이다. 엄청나게 많은 이주민들이 바다나 강을 건너와 연합해서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伯+濟라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맏 형님 되는 부족이 친히 강이나 바다를 건너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1대 왕 온조의 기록인 '온조 본기'에 따르면, 온조가 나라를 세우던 초반에는 10명의 신하들의 부족들이 연합해서 나라를 세워서 十濟라 하였는데. 미추홀에 따로 나라를 세우고 살고 있던 온조의 형인 비류가 자살한 후 비류를 따르던 부족들이 온조의 백성이 되어 나라가 더 세져서 '100濟(百濟)'라 했다고 적고있는데. 伯濟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않는가.

동생인 온조가 백제의 주인이 되었다면 伯濟라 함은 약간 이상해진다. 나라 이름은 맏제인데. 실상 시조는 맏형인 비류가 아니라 동생인 온조가 되니 말이다.

비류,온조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근거도 없고,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서기 12세기 고려시대에 적힌 '후대 기록'이다.

서기 3세기 후반에 적힌 '삼국지 동이전'보다는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 

이상한건 이뿐이 아니다.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백제는 경기도,충청도,전라도를 다스리던 마한 54국 연맹의 일개 회원국에 불과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편을 보면, 백제 1대 왕 온조는 나라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마한을 멸망시켜 완전히

흡수했다고 나온다. 마한이 수십개 나라로 구성된 연맹이라는 것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고 마한은 그냥 왕과 성주들이 다스리는 통일 국가처럼 나온다. 이런 점에서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초기 기록은 사료적 가치가 현저히 추락해버린다. 

그렇다면 '온조'부터 '계'까지 초기 백제의 족장들은 그저 마한 연맹의 일개 회원국에 불과했고...,

그렇다면 마한 연맹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마한 연맹의 연맹장이다. 

삼국지 동이전은 마한 연맹의 연맹장 나라를 '목지국' 혹은 '월지국'이라 적고 있다. 목지국의 족장은 '진왕(辰王)'이다.


사기 조선전과 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을 두루 살펴보면,

본래 조선반도의 북부는 예맥과 조선과 진번과 임둔이, 그리고 조선반도의 남부는 '진국(辰國)'이란 나라가 다스리고 있었다.

위만조선 멸망 후 대규모 난민들이 몰려오고, 위만조선 땅엔 낙랑군,현토군,진번군,임둔군 4개의 식민지가 설치되면서 

중국 한나라의 군사적 위협이 조선반도의 남부에 밀려닥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진국이란 나라는 사라지고 대신 마한 연맹의 연맹장인 목지국으로 다시 새롭게 탄생한다.

그리고 경기도,충청도,전라도엔 마한 연맹 54국이, 충주,청주,경상북도엔 진한 연맹 12국이.

경상남도엔 변한 연맹 12국이. 그리고 이 모든 삼한 78국을 통틀어 '한(韓)'이라 부르고, 이 한의 총 대장인 대왕은

바로 진왕(辰王)이 대표했다. 

그리고 이 진왕의 영향력은 서기 3세기 후반까지는 확실히 계속되었다. 


이런걸 살펴보건대.., 근초고 통치 초반 20년을 사실상 백제의 주인이나 다름 없던 '진씨(眞氏)' 가문은 목지국 진왕의 

가문이 아니었을까? 비록 한자가 眞과 辰으로 차이 나기는 하지만 발음은 '진'으로 똑같을 뿐더러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의 초기 기록을 보면 놀랍게도 두 나라에는 '진(眞)'이란 성씨를 쓰는 가문이 

백제,신라 두 나라의 정치를 상당한 수준으로 장악하고 있던 것으로 나온다.


점 점 더 분명해지는거 같다. '삼국지 동이전 진한 편'은 신라가 본래는 진한이었고 진한은 본래 진국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제와 신라 양쪽에 진씨(眞氏)가 실세로 있다는 것은 놀랍지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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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정권의 문명 발전을 도운 '진씨'는 한자로 진시황의 진秦나라 진씨秦氏(일본식 훈독 발음으로 '하타'씨. 이들이 들여온 씨족 신이 '하치만'이라고 하네요.)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신라계 도래인들이라 불리므로 흠. 백제,신라의 진씨眞氏랑 같은 일족인건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하타씨의 수장인 궁월군이 야마토에 올 때 거느리고 온 인구 수가 무려 120현縣들의 인민들이고, 황해도 대방 땅은 물론 백제 수도권의 중요한 기술자들과 농부들을 데리고온거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피난민이 아니라 백제 왕권의 정치적 목적 하에 야마토를 키워주려고온 거겠죠. 그리고 궁월군弓月君은 황해도의 구월九月산과도 관련이 있을거같아요. 어쩌면 구월산 단군(檀君)의 후손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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